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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보도하는 기자정신, 영화 '스포트라이트'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스포트라이트 (Spotlight)"가 TV에서 방영하고 있길래 재빨리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 영화는 보스턴글로브(The Boston Globe) 사의 탐사보도팀인 '스포트라이트'팀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새로 부임한 편집장 '마티'의 요청으로 스포트라이트 팀이 "카톨릭 사제의 오래된 아동 성추행과 이에 대한 카톨릭 교구의 조직적인 은폐"를 파고들어 폭로하는 영화입니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의 주인공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와 그의 믿음직한 동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취재를 거듭하여 조금씩 진실에 다가갑니다. 영화가 점점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배신하는 사람이나, 이미 권력의 노예가 되어 훼방을 놓는 상부층이 있을까 봐 불안해하면서 봤는데, 다행히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조직문화에 대한 저의 불신과 경험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화 속의 편집장은 알아낸 진실에 분노하며 지금 당장 보도해야 한다는 현장 취재 기자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단순폭로가 아닌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는 기사를 내기 위해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건설적인 의견까지 피력합니다.

물론 영화 속의 보스턴글로브가 늘 정의롭고 실수 없는 조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잠깐 드러났던 문제의식(또는 양심고백)은 폭로를 준비하는 이 조직 또한 늘 진실에 열려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짧지만 분명하게 집고 넘어갑니다.


진실을 발표할 때도 타이밍이 존재하는가?  "YES."

기자들의 실제 탐사보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기자들의 생활상을 충실하게 그려낸 영화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진실을 발표하는 행위에도 '타이밍'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 줍니다. 그들이 기사를 완성한 시점은 미국이 9.11 사태를 경험하고 저마다의 충격과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종교의 힘을 통해 위로받거나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편집회의에서 이런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여 "9.11 이후의 첫 성탄절인데, 지금 이런 기사를 낼 수는 없다."라고 판단합니다. 기사는 결국 해를 넘겨 2002년 1월 6일 기사를 내보내게 됩니다.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


(출처) The Boston Globe "Church allowed abuse by priest for years" (January 6, 2002) (https://goo.gl/m5aSoq)


왜 이렇게 진실을 폭로하는데도 타이밍을 재게 되는가. 아니 그 이전에 보도 타이밍을 재는 것이 바람직한가. 

영화에서는 사회적 파장과 유족들의 슬픔을 고려하여 보도 타이밍을 미뤘지만,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기획기사의 경우, 기사의 폭발력 또는 기사가 보도된 이후의 행동변화를 유발하기 위해 타이밍을 재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취재를 하는 것은 진실탐구의 과정이지만, 보도의 타이밍을 결정하는 행동은 하나의 전략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이러한 언론보도의 특징은 인간의 특성,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독자들이 동시에 반응하고 집중할 수 있는 아젠다 수의 한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를 좀더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독자들이 집중하기 좋거나 또는 편안하게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행위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론보도에 '타이밍'이 존재하고, 편집부가 이를 컨트롤 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주제에 집중하기 위한 5

영화를 다보고 나니,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예전에 이동진 씨가 방송에 나와서, 이 영화에 성폭력 희생자의 회상장면이 나오지 않고, 기자간의 사랑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더 좋은 영화였다고 말하더라.' 듣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아마 아래 방송을 봤던 것 같습니다.

(출처)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당 (B tv) 

본 영상에서 언급되는 '제보자',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도 찾아서 보고 싶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정리해보면 이 영화에 없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ㅇ 성폭력 회상신 (성폭력을 시각화하지 않는다. 증언하는 사람들의 상처와 현재의 고통에 집중한다.)

ㅇ 범죄를 쫓는 기자들의 개인적 사연 (개인적 모티브가 없고, 그들은 단지 기자일 뿐이다.)

ㅇ 범죄자의 개개인의 이야기 (특정계층의 '범죄' 자체에 집중한다. 그들 개개인이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를 보여주지 않다.)

ㅇ 주인공들의 로맨스

 이 사건 이후, 주인공들이 사회적 인정을 받는 모습  (스포트라이트 팀, '저널리즘'부문 퓰리처상 수상 (2003년))


특정 개인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 없이, 조직 부패 자체와 그를 파헤치는 기자들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봤는데, 감독의 분명한 의도와 연출에 의한 것임을 이 영상을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부감 없이 관객들의 자신이 의도한 관점에 붙들어 드는 감독의 실력이 놀랍네요. 

기자들의 생활, 고민, 치열한 의식과 토론이 잘 드러난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좋은 영화입니다.

(출처) The Boston Globe "Spotlight triumphs with best picture Oscar" (https://goo.gl/ROyG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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