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7. 17:30ㆍETC.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
(한글번역판, ebook, iBooks 버전)
며칠 전, <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 >를 읽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은 알았어도, 게임 제작자는 몰랐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학을 갓 졸업한 개인개발자의 작품이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제가 가봤던 IVY League 대학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예일 Yale 대학 출신이었을 줄이야.
그렇지만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 두가지 사실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전율했던 부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페르시아의 왕자'속의 그 부드러운 달리기, 멈추기, 점프하기, 매달리기가 전부 머리속에서 그냥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행동하는 모습을 전부 촬영하여 그것을 디지타이징하여 사용하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정식 명칭은 '로토스코핑'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그때 사용했던 영상의 주인공이 개발자의 동생이었다니!!
당시 그 어떤 게임보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캐릭터의 행동이 부드러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개발자이자 책의 저자인 조던 매크너(Jordan Mechner)는 원래 게임제작자보다는 영화각본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했었는데, 본인의 관심분야와 그에 못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이 적절히 결합되어 탄생한 작품이 페르시아의 왕자였던 것입니다. 역시, 사람의 관심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이 될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책의 초반부에서 조던 매크너가 소스(source) 로 활용한 영상 및 스케치 자료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게임을 한번이라도 플레이 해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게임 상에서 어떤 장면에 차용되었는지를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초자료를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었는지, e-book(iBooks 버전)에 담긴 원본 영상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 안에서 달리고 있는 저자의 동생, 데이비드 매크너(David Mechner)의 모습 그대로가 곧 페르시아 왕자의 몸짓이 되어갔습니다. 공주가 자신을 구하러 온 왕자를 뒤돌아서서 와락 껴앉는 장면도 말이죠.
페르시아 왕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 '데이비드 매크너'와 공주 역활의 '티나'
(저자 '조던 매크너'는 티나가 꽤나 맘에 들었던 것 같다. 일기에 계속 등장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튜브에도 초기개발에 활용했던 영상이 올라와 있었지만, 책이 일기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들을 진행했었는지 알 수 있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더욱 짜릿했던 것 같습니다.
일기에서 발췌해낸 개발일지 : 청춘드라마 DNA
책의 제목은 개발일지라고 적혀있지만, 역자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이것은 단순한 개발일지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이루려고 노력하는 재능있는 젊은 이의 고민과 떨림, 걱정과 불안이 생생하게 드러나있는 인생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따로 ‘개발일지’를 썼던 것이 아니라, 그가 꾸준히 써내려갔던 일기 중에서 개발과 연관있는 이야기들을 발췌해서 편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루한 개발 History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에 따른 작가의 심경변화와 생각의 흐림이 생동감 넘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일기를 쓰면서 나중의 독자를 위해서 내용을 각색해가면서 쓰겠습니까? 물론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노력을 하면 하는 만큼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무튼 일기 발췌본으로 이루어진 이 개발일지는 그 태생의 특성상, 독자가 모든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운데, 인생에서 시시각각 튀어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지명들 때문입니다. 소설과 일기의 확실한 차이점이기도 하고,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새로운 장소와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명이나 사건, 당시 발생했던 사건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주석이 달려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는편입니다. 오히려, 원작자 조던 매크너가 국내번역판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보냈을 만큼,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은 아무래도 사진이나 객관적인 인물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조금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저자가 직접한 게임 디자인 : 새도우 맨
본인의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정확하게 표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기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소설이나 영화같은 수준의 정제되고 의도된 재미를 느끼기는 조금 힘듭니다. 각색되지 않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감내를 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을 즐겁게 즐긴 사람들이라면, 그 게임 제작자의 일기를 들여보는 재미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개인적으로 많이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더더욱 뭔가 특정 주제를 기준으로 맥을 짚어가며 읽기는 어려웠습니다.
책 전체를 통틀어서 저자의 사건과 마음에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던 부분은, 바로 '페르시아의 왕자 1'이 개발자 본인과 주변 모두의 기대를 앉고 발매되었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도 못하게 꽤 오랜 시간 동안 판매부진에 빠졌던 부분이었습니다. 게임 발매 전, < 페르시아의 왕자 Prince of Persia >의 작품성과 히트가능성에 대해서 주변 모두가 인정했고, 겸손한 성격의 저자 본인조차도 성공, 혹은 대박을 예상했던 게임이 판매 개시 후,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본인의 창작물에 대해 저자가 느꼈던 애처로움, 약간은 분노에 가까운 괴로움이 읽는 내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인생은 저마다가 레벨업 해 나가는 게임이다 : Life Online
저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변화가 있는데, 이 시간흐름에 따른 저자의 생각의 변화와 함께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읽어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는 < 페르시아의 왕자 1편 >에서는 개인개발자로서 제작책임자, 프로젝트 매니저, 홍보팀 사람들과 만나 회의를 하고 의견을 조율하지만, < 페르시아의 왕자 2편 >제작 시에는 성공한 게임제작자로서, 개발 개발을 총괄 책임지는 프로젝트 리더가 되어있습니다. 더욱 더 많은 선택이 가능한 위치이고, 고민의 내용 또한 달라져 있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언급되는 새로운 게임, < 라스트 익스프레스 Last Express > 개발 때에는 직접 회사를 차리고 개발을 진행합니다. 개발일지 초반에는 처음에는 로열티 협상을 하는 ‘약한’ 주인공이 향후에는 직접 게임회사를 차리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즐기는 게임의 엔딩과도 오버랩되면서 이 개발일지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만약 전설적인 게임기획자의 회고록 혹은, 제작 노하우를 적어놓은 책으로 기대를 하고 접근한다면 기대한 것만큼 얻어가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개발일지에서는 뭔가 게임기획을 잘하는 방법이라던지, 본인의 기획방법이라던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 놓은 부분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물론,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그냥 역사에 길이 남을 게임을 제작한 저자의 한 청춘 페이지를 덜어낸 것이기 때문에, 열정있는 한 젊은이의 청춘 드라마로써 접근하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제대로 마주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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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가기
책에서 저자와 그의 절친한 친구 '토미'가 게임을 제작하면서 연구하고 고민했던, '페르시아' 풍의 이야기들과 문화들이 궁금해져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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